과라니화 도입 73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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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은 파라과이의 통화단위인 과라니화가 실시 된지 73주년을 맞는 기념일이었다. 과라니화의 탄생은 볼리비아와 벌인 차코전쟁이 끝난 후 태동되기 시작했다. 당시 대통령인 엘리히로 아잘라는 재무장관직을 지낸바 있는 인물로 파라과이의 경제 문제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먼저 정부의 공공부채와 민간부채를 분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전쟁이 종전된 후 미국 측에 지원을 요청, 당시 미국 정부를 돕고 있던 벨기에 통화 전문가를 통해 새로운 통화정책의 기초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1943년 10월 5일 당시 대통령인 이히니오 모리니고 대통령은 “파라과이 공화국 통화제도”를 공포, 화폐개혁을 단행, 종전의 페소화 체제에서 과라니화로 변경을 단행했다. 과라니화는 이후 현재까지 73년간 존속, 잦은 화폐개혁이 발생한 남미지역에서는 이례적으로 가장 오래된 통화로 꼽힌다. 그만큼 출범이후 인플레율도 기록적이어서 43년 당시 1과라니와 현재의 1과라니는 무려 30만%의 인플레이션을 보이고 있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0이 계속 늘어나고 고액권 발행이 시작됐으며 1998년 드디어 10만과라니권 발행이 시작됐다. 세계적으로 보면 최고 고액권에 0이 가장 많은 통화 중 6번째로 꼽힌다. 아르메니아, 벨로루시,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레바논 다음으로 0이 많이 붙은 고액권이 유통되는 것이다. 일부 통화전문가들은 경제적 비용 절감을 위해 현재의 과라니화 단위에서 0을 3개 떼어내는 (100,000과라니화가 100과라니화가 되는 식) 방식으로 변경해야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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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남미동아뉴스

파라과이 다이제스트 남미동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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