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희 실무관
오늘날 세계는 점점 더 빠르게 글로벌화하고 있다. 이주, 즉 ‘살던 곳을 떠나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로 옮겨 가는 일’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이유 등으로 많은 이들이 새로운 삶을 찾아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주가 흔한 현상이 되었다고 해서 그 과정이 단순하거나 쉬운 것은 아니다.
멕시코계 미국인 기자 호르헤 라모스는 이주를 “믿음의 행위”라고 정의했다. 익숙한 것을 모두 뒤로하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일, 확실한 기반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선택하는 일, 그리고 수평선 너머 어딘가에 더 나은 세상이 있을 것이라 믿는 것. 이주자는 매일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인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차별과 편견을 마주하며, 익숙하지 않은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 결국 이주자의 삶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충돌하고 타협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고향의 문학은 이주자들에게 정신적 피난처가 된다. 문학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이자, 자신 안에 공존하는 두 문화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이주자가 남긴 글은 종종 ‘향수의 문학’이라 불린다. 떠남과 그리움은 인류 문학사에서 중요한 영감을 제공해왔으며, 그 전통은 오디세이아를 쓴 호메로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디세우스의 귀향 여정은 결국 인간 존재에 내재한 귀소 본능을 상징한다. 또한 나치 치하에서 은신하며 삶을 기록한 안네 프랑크 역시 글을 통해 자신의 내면 세계를 지키고자 했다.
파라과이 문학에서도 이주와 망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아우구스토 로아 바스토스는 정치적 망명 중에 독재 체제를 고발하는 작품을 남겼으며, 문학은 그의 외로움을 견디게 한 동반자였다. 반대로 유럽에서 파라과이로 이주한 라파엘 바레트와 호세피나 플라 같은 작가들은, 단순한 외부인이 아니라 파라과이 사회의 일원으로 깊숙이 자리 잡았다. 이들은 민중의 삶을 기록하고, 사회 문제에 대한 깊은 통찰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오늘날에도 이민자 출신 작가들은 문학계에서 점차 두드러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민진 리는 『파친코』를 통해 이민자의 삶과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었고, 독일에 정착한 철학자 한병철 역시 동시대 사회를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거 이주자는 주변인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제는 거주 사회의 적극적인 구성원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문학은 이러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국경이나 국적을 초월하는 문학은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교차시키며 사회 내 상호 이해를 촉진한다.
대한민국에서는 1999년부터 ‘재외동포문학상’을 개최하고 있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소설, 시, 수필, 아동문학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자유롭게 작품을 출품할 수 있으며, 최근 대회에는 53개국에서 1300편이 넘는 작품이 모였다. 파라과이에 거주하는 한인 작가들도 여러 차례 수상했다. 『파라과이 랩소디』(저자 명세봉)와 같은 작품은 이민자의 일상과 내면을 섬세하게 담아내며 독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글을 쓰는 행위는 감정을 인식하고 정리하는 데 탁월한 방법이다. 수전 손택은 『화산의 연인』에서 “외국에 살면 삶이 하나의 장면처럼 보인다”고 표현했다. 이주자의 삶은 필연적으로 세상을 다층적이고 거리감 있게 바라보게 만든다. 이러한 시각은 문학적 창작을 자극하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새 삶에 대한 두려움을 섬세하게 포착하게 한다.
익숙했던 것을 떠나 낯선 환경으로 이주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비록 많은 이들이 희망과 기대를 품고 떠났지만, 새로운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하는 일이다. 이러한 감정은 글을 통해 가장 진솔하게 표출된다.
문화 간 교류는 문학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주제와 형식 모두 확장되며, 다문화적 경험이 작품 세계에 깊이를 더한다. 오늘날처럼 기술로 모두 연결된 세상에서는 누가 이방인이고 누가 토착민인지 구분하는 일조차 무의미해졌다. 다양한 문화적 만남은 서로를 이해하고 배우는 기회가 되며, 문학은 그러한 소통의 가장 강력한 매개체가 된다. 결국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이라는 무대 위를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