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부정선거 음모론, 그다음은 어디로?


이웅용 인천시선관위 총무과장
이웅용 인천시선관위 총무과장

‘선관위가 자초한 일이니 잘못한 거 맞다.’ 전직 간부들의 ‘아빠 찬스’ 사건 이후 언론 보도를 볼 때마다 들었던 생각이다. 인간은 물질적 욕망의 덩어리라는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의 말처럼, 간부들의 과도한 욕망이 충성으로 미화된 수하 조력자들의 사적 욕망과 어우러져 인사문화를 흔들어놓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사이 부패한 가족회사라면 부정선거 역시 당연히 가능할 거라는 담론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부정선거 음모론 역시 자기편의 집권을 향한 무한 욕망의 동어반복, 세상을 불신과 반지성으로 내모는 우울한 초상에 불과한데 말이다. 이제 선거판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가고 있는 듯하다.

사실, 감사원이 징계 등을 요구한 32명의 ‘뺀질이’들을 제외하면 2900여명 선관위 직원들은 부모를 ‘잘못’ 만나 공정한 시험을 통과하고, 그저 묵묵히 일하고 있는 이들뿐이다. 선관위 직원 주도하에 대놓고 선거 현장에서 부정이 있었을 거란 발상 자체가 내 양심에 비수를 꽂는다.

조직의 잘못을 회피하려는 것은 아니다. 공직윤리 감수성이 턱없이 둔한 그들을 준엄히 문책하고, 선관위가 진정성 있는 인사 쇄신안을 마련해야 함도 지당하다.

선거 결과 가치의 존중은 공동체적 유대와 현실정치에 필요한 공화주의의 한 요소다. 헌법과 민주적 기본질서의 뿌리임은 물론이다. 사이버세상을 치외법권 지역으로 착각하고 있는 유튜브 상업주의자들의 선동이 서서히 사회에 먹혀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민주적 선거질서가 과연 어디로 곤두박질할지 두려울 뿐이다.

민주주의를 지켜온 상호관용의 규범이 흔들리고 있는 한국 사회가 공무원들이 선거 부정까지 저지른다는 폭력적 공론(空論)마저 다원적 민주사회라는 미명하에 허용한다면, 민주주의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차라리 선거제도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은 어떨까. 헌법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제72조)고 정한다.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까지 선포한 마당에 선거제도가 어찌 국가 안위와 관련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당장은 어렵겠지만, 음모론자들이 그리도 불신하는 사전투표를 포함해 국민적 판단을 받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상생의 해법을 도출하기 어렵다면 선거민주주의의 위기를 국민적 숙의를 통해 극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선관위 직원은 대선 사무에 열심히 임하고 있다. 음모론에 가족회사란 오명까지 짊어지고 일을 해야 하는 직원의 정서적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선거 이후에도 다시 제기될 음모론 역시 불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분명히 말한다.

부정선거를 감시하는 숨은 주역은 바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잘난 부모도 배경도 없는 이들이다.

32명이 설계한 인사 부정은 있었을지언정 2900여명 선관위 공무원이 저지른 선거 부정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절대 없다.

알 수 없음의 아바타

글쓴이: 남미동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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